한밤중에 갑작스레 울린 초인종 소리에 흠칫 놀랐다. 시계를 보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하고 인터폰의 화면을 보았다. 현관 앞 복도의 오래된 희미한 전등 빛이 밝은 색의 머리카락을 비추고 있었다. 많이 본 머리카락 이었다.

“캇짱?”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아함 이었다. 캇짱이 이 시간에 웬일로? 고등학교를 졸업 한 이후로 원래도 그랬지만 딱히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럴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더욱 지금 현관 앞에 서서 내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가 생소했다. 특히,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음에도 본 적 없는 온화한 무표정이.
도어락을 풀고 현관문을 열었다. 훅 하고 여름밤의 풀내음 나는 공기가 끼쳤다. 살랑 부는 바람에 밝은 색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스킨냄새가 콧잔등을 스쳤다. 아, 진정하자. 캇짱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 캇짱. 오랜만이네?”
“어.”

정적. 아. 이보다 어색할 수 있을까. 캇짱은 무심한 듯 짧은 대답만 툭 던지고는 빤히 내 얼굴을 쳐다봤다. 무슨 일 있어?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본적 없는 표정도 그렇고, 혹시 취한건가 싶어 냄새를 맡아봤지만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뭐지? 하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이유도 없이 찾아 올 리가 없는데. 하고 저금 더 몸을 가까이 해 냄새를 맡으니 가만히 쳐다만 보던 캇짱이 피식, 웃었다.

“뭐하냐?”
“어? 어…아니, 그게. 혹시 취한 건 아닌가, 싶어서… ”
“아앙? 아니거든. 데쿠 너인 줄 아냐. 술 처먹고 실수하게?”
“나, 나도 술 먹고 실수 한 적은 없어!”
“알빠야.”

아. 이제 좀 내가 알던 캇짱 같았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하는 표정에 왜인지 모르게 안심이 돼 표정이 풀려 입 꼬리가 올라갔다. 뭘 웃고 앉았어. 캇짱이 마음에 안든 다는 듯 손등으로 툭 내 이마를 쳤다. 미안. 머쓱해져 캇짱이 친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 했다.

“하여튼 데쿠새끼. 뭐가 미안하다고 허구한 날 미안하다는 말만 입에 달고 사냐. 그래가지고 히어로 일은 어떻게 할 거냐?”
“그거랑은 관계없잖아…”
“관계가 없기는 개뿔이. 야, 임마. 너는,”
“그런 말 하려고 우리 집까지 찾아 온 거야?”

순간 조금 울컥했다. 졸업하고 몇 달이 지나 처음 얼굴을 마주 한 건데 이렇게 모진 말밖에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부터가 좋은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조금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생각지도 못한 가시 돋은 말이 나왔다. 내뱉은 뒤에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아, 아니 캇짱. 그게, 미안!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나. 나도 모르게…”
“됐어. 내가 미안해.”
“어?”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살짝 숙여 바닥을 향해 있던 고개를 휙 들어 캇짱의 얼굴을 살폈다. 정말 취한 거 아니야? 차마 정말로 묻지는 못하고 속으로 말을 삼키며 또 다시 본적 없는 표정을 짓는 캇짱을 보았다.

“혹시 무슨 일 있어서 찾아 온 거야?”
“아니.”
“어…그럼 왜?”
“…그냥.”
“어? 그냥? 왜 굳이…”
“아 진짜 데쿠새끼 쓸데없이 생각 존나 많네. 진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다시금 또 미간을 좁힌다. 고개를 바닥을 향해 숙이고 중얼중얼 거리는 것을 보니 욕을 하는 것 같다. 캇짱 오늘따라 감정기복이 심한 것 같네…. 또 한 번 말을 삼켰다. 또 화낼까봐 무서웠다. 짜증이 난 표정으로 머리를 헤집던 캇짱은 이내 푹 한숨을 쉬며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 다시 그 표정.

“그냥 생각나서 왔다고. 알았냐?”
“생각…나서?”
“어. 그…잠도 안 오고.”

말을 마친 캇짱은 몸을 돌려 바닥에서 부스럭 하고 검은색 편의점 봉투를 들고는 내게 건네었다. 뭐야? 봉투를 받아 안을 보았다. 맥주 두 캔…

“이건 왜?”
“하나 들어.”
“어?”
“…좀 걷자고 멍청아.”

봉투에서 캔을 꺼내 하나를 나에게 쥐어주고는 나머지 하나를 제 손에 들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는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낯설어. 괜히 뛰려고 드는 심장을 심호흡으로 진정 시켰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나는.

“안 따라오고 뭐해.”
“으, 응! 갈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기다리는 캇짱에게 다급하게 달려갔다. 여름밤의 공기가 풀냄새와 섞여 시원하게 나를 감싸 안았다. 손에 쥔 맥주보다 더.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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